Let your life speak!_ 파커 J. 파머
내가 ‘소명(vocation)’에 대한 의문에 눈뜬 것은 삼십대 초반의 일이다. 그 즈음 겉보기에는 모든 것이 잘 되어 가고 있었지만, 나의 영혼은 텅 비어 있었다. 돈을 벌고, 권력을 얻고, 경쟁에서 이기거나 자기 자리를 탄탄하게 굳히는 일보다 더 의미 있는 삶의 길을 찾는 사람일지라도, 자칫하면 그 여정에서 자기 것이 아닌 인생을 살 수도 있음을 나는 어렴풋이 깨닫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바로 그러고 있는 것이 아닐까 두려워하며 한밤 중에 깨어나 몇 시간이고 천장만 바라보곤 했다. 당시 나는 내 안에 더욱 심오하고 건실한 인생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더욱이 그러한 인생이 진짜 있는 것인지, 믿을 만한 것인지, 실현 가능한 것인지조차 확신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퀘이커 공동체에서 내려오는 오래된 경구 하나를 알게 되었다.
“네 인생의 목소리를 들어 보아라(Let your life speak).”
그 말은 내게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물론, 그때 나는 그 말의 의미를 충분히 이해했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말이다. ‘최고의 진리와 가치가 당신의 삶을 이끌도록 하라. 매사에 최고의 진리와 가치를 기준으로 행동하라.”
30여년이 지난 오늘, “네 인생의 목소리를 들어 보아라.”라는 말은 사뭇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그 말 속에 내포된 여러 가지 의미와 나 자산의 단순하지 않은 경험을 그대로 반영하는 다음과 같은 의미로.
“당신이 인생에서 무엇을 이루고자 하기 전에, 인생이 당신을 통해 무엇을 이루고자 하는지에 귀 기울여라.” “당신이 어떤 진리와 가치관에 따라 살 것인지를 결정하기 전에, 당신이 어떤 진리를 구현하고 어떤 가치를 대표해야 할지 인생이 들려주는 목소리를 들어보아라.”
소명의 참된 의미는 ‘vocation‘이라는 단어 안에 숨겨져 있다. 소명이라는 단어의 어원은 라틴어로 ‘목소리(voice)’이다. 소명은 내가 추구해야 할 목표를 의미하지 않는다.
소명은 내가 들어야할 내면의 부름의 소리이다. 내가 살아가면서 이루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말하기에 앞서, 내가 어떤 존재인지를 말해 주는 내 인생의 목소리에 귀 귀울여만 한다. 나만의 고유한 정체성을 일러 주는 진리와 가치에 귀 기울여야만 한다. 마지 못해 따르는 삶의 기준이 아니라 진정한 내 인생을 살기 위해 따르지 않을 수 없는 그런 기준 말이다.
이러한 소명이 가지고 있는 의미, 이면에는 때로는 소명이 에고(ego)의 영역을 침범하기 때문에 에고가 소명의 목소리를 듣지 않으려 한다는 진실이 숨어 있다. 사람은 누구나 일상에서 의식하는 ‘나(ego)‘와 다른 인생을 가지고 있다. 타고난 그릇으로서의 ‘나’로 살아가고자 하는 인생 말이다. 대대로 전해 오는 모든 지혜의 말씀이 가르치는 바가 바로 이것이다.
나의 에고가 보호 마스크와 이기적으로 꾸며낸 이야기로써 나를 정으하려는 방식과 나의 참자아의 실체 사이에는 바다를 사이에 둔 것만큼이나 큰 차이가 있다.
인생의 표면적인 경험 아래에 더 깊고 진실한 인생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며 고생도 해봐야 한다. 이것만으로도 “네 인생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라.”라는 충고에 따라 살기는 쉽지 않다. 더욱이 우리의 학교 교육은 첫날 부터 자기 자신은 쏙 빼놓고 그 밖의 모든 것과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쫑긋 새우도록 만든다. 그리고는 나를 둘러싼 사람들과 외부의 힘을 가리키며 삶의 길잡아로 삼으라고 하지 않는가?
어떻게 자기 인생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것인가 하는 문제는 연구해 볼만한 가치가 있다. 우리 문화권에서는 쓸데없이 여러 방면에서 정보를 수집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 문제의 근원이 인간의 영혼일 때는 별 효과가 없는데도 말이다. 영혼은 소환장이나 반대 심문에는 응답하지 않는다. 영혼은 고요하게 그를 받아들이며 신뢰할 만한 상황에서만 자신의 진실을 말한다.
영혼은 야생동물과 같아서 거칠고 활달하며 노련하고 자립적이지만, 동시에 매우 수줍음을 탄다. 야생동물을 보려면 숲에 들어갈 때 절대로 요란한 소리를 내며 나오라고 불러 대선 안 된다. 오히려 살금살금 걸어 들어가서 한 두시간 정도 나무 밑에 앉아 조용히 기다려야 한다. 그때 우리가 기다리던 동물이 모습을 나타내고 그토록 보고 싶어 하던 야생의 모습을 만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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