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의 힘. 일상은 어떻게 예술이 되는가?
클림트, 고흐, 피카소, 마네, 뭉크, 뒤샹, 다빈치, 세잔, 모네 등등
책에 소개된 미술가들은 한마디로 다들 ‘광기’들린 이다. 점잖게 표현하면 그렇다는 것이고, 요즘 말로 다들 똘아이, 미친놈들이다.
그들의 넘쳐나는 재능과 에너지가 그들을 이상스런 광인으로 만들었을 수도 있고, 또 반대로 그들의 결핍과 고통이 미술가들을 예술의 길, 창작의 길로 이끌었는지도 모른다.
어쨌건 그들은 그 시대의 ‘표준’을 살지 않았다. 그 이상을 살았거나, 그 이하를 살아냈다. 또는 그 이상과 이하를 자유로이 넘나들고 오가며 살았다. 세상의 표준으로 살지 않았다는 것은 어쩌면 그들 나름으로 살아거고, 그들답게 살아갔다는 말과 다름 아니다.
그들처럼 예술에 미치지 않더라도, 삶에는 미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자신의 존재를 걸어 자신의 전부를 살아가고, 두려움 없이 ‘나’다운 삶을 살아가는 것. 그것이 삶에 미치는 것이고, 삶을 예술적으로 창조적으로 살아가는게 아닐까..
구스타프 클림트는 조용하고 강인한 노동자처럼 살았다. 그는 아령 체조로 하루를 시작해 온종일 지치지 않고 그림을 그렸다. 밤이 되면 카페에 들렀다가 집에 돌아와 말없이 잠자는 생활을 규치적으로 되풀이 했을 정도다. 특히 일할 때 다른 사람들에게 방해 받는 것을 싫어했고 친구들이 스튜디오에 찾아오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대신 클림트는 아침 식사 시간을 친구들의 방문 시간으로 활용했다. 그는 친구는 물론 일로 자기를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아침 식사를 같이하는 조건으로 만남을 수락했다. 그런데 그것이 워낙 규치적이어서 의식ritual처럼 되어버렸다. p20
사실 뒤샹은 체스에 몰입하는 까닭을 두고 자신과 체스 사이에서 ‘사회적 유용성’의 부재를 발견했기 때문이라고 말하곤 했다. 그러니까 가장 쓸모없는 일, 그것이야 말로 최고의 ‘순수’가 아닌가 p147
피카소는 숨이 막혔다. 질서와 품위를 좋아하는 아내의 원칙을 무시하기 시작했다. 특히 그녀가 좋아하는 레스토랑에 반감ㅇㄹ 품었다. 피카소에게 식당이야말로 ‘밥 한끼 같이 먹기를 청하는 무대‘였는데, 올가의 그곳은 호화로운 만큼 껄끄럽게 느껴졌다.p197
아침 식사 시간은 피카소에게 아주 중요했다. 아침 식사를 중요한 의식처럼 여겼다. 피카소는 자주 쟁반에 놓인 아침 식사의 배치가 마음에 안든다고 불평부터 했다. 역시 미술가는 다르다. 밥상을 캔버스로 보는 거다.p200
마네는 미술계와 대중의 혹평에 썩 잘 맞서 나갔다. 마네는 실패라는 것도 자질이 필요한 것이라면서 “욕을 먹는 건 내 운명이다. 나는 그것을 철학적으로 받아들이겠다’고 공언했다.p205
얼마나 대범하고 잔혹한 동시에 긍정적인 레토릭인가! 바로 아모르 파티(Amor Fati’다!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기로 한 것이다. p205
이 처럼 몬드리안의 작품은 즉석에서 창작, 연주 되지만 무한한 자유 변주를 하는 재즈와 같았다. 몬드리안의 작품에서 재즈의 스타카토처럼 장단의 살아 있는 리듬의 만나는 것은 음악을 사랑하는 이들에겐 분명 색다른 매력일 것이다.
p230
미켈란젤로는 조각을 최고의 예술로 생각했다. 같은 조형 예술인 회화와의 단순 비교가 아닌, 문학과 음악 같은 타 장르 예술과 비교해도 가장 뛰어난 예술이라고 생각했다. 르네상스인들은 인문학자들의 도움으로 조형예술의 위상이 좀 나아졌다고 느꼈지만, 비천한 육체노동에 근간한 조각이 최고의 예술이라는 미켈란젤로의 생각에는 전적으로 동의할 수 없었을 터다!
미켈란젤로의 이런 생각은 조각만이 유일하게 신의 창조 행위를 상기시키기 때문이다.
p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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